‘속도 늦춘 언론중재법’ 여 설득 부족, 야 정쟁 치중…언론 혐오만 증폭

고희진·이혜리 기자

한 달여 논란이 남긴 것

<b>야당 몫 국회 부의장·상임위원장 선출</b> 박병석 국회의장이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제사법위원장 등 상임위원장 보궐선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여야는 야당 몫 국회부의장으로 국민의힘 최다선(5선) 정진석 의원을 선출하고, 국민의힘이 7개 상임위원장을 맡으면서 21대 국회 개원 1년3개월 만에 국회 원구성이 정상화됐다.  국회사진기자단

야당 몫 국회 부의장·상임위원장 선출 박병석 국회의장이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제사법위원장 등 상임위원장 보궐선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여야는 야당 몫 국회부의장으로 국민의힘 최다선(5선) 정진석 의원을 선출하고, 국민의힘이 7개 상임위원장을 맡으면서 21대 국회 개원 1년3개월 만에 국회 원구성이 정상화됐다. 국회사진기자단

여야 대치 속 정쟁만 부각
진지한 개혁 논의는 실종
‘신뢰 바닥’ 언론의 현주소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여야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한 달가량 미루면서 언론계와 정면충돌은 일단 피하게 됐다. 그간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중재법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통과까지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찬반 논란만 거셌을 뿐 정작 피해자 구제 및 언론개혁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언론 관련법이 정쟁 도구가 됐고, 정치권이 ‘가짜뉴스’ 프레임으로 언론 혐오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언론이 사회 공기로서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처리를 강행하면서 ‘가짜뉴스로 고통받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개정안은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통상 ‘가짜뉴스’라 불리는 보도가 그 대상이다. 문제는 가짜뉴스에 대한 개념이 모호하다는 데 있다.

전례를 보면 세월호 참사, 코로나19 국면에서 주로 유튜브를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불분명한 출처를 근거로 사적으로 유포했던 정보들을 가짜뉴스라 불러왔다. 이 같은 게시글들은 언론중재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으로 규율된다. 정치권 등에서 일부 언론의 보도를 반박하면서 가짜뉴스라고 부른 적은 있지만, 취재를 기반으로 하는 기성 언론의 보도를 공식적으로 가짜뉴스로 규정짓지는 않았다.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밝혀왔던 이재진 한양대 교수는 “가짜뉴스를 말하려면 허위·조작 ‘정보’라고 해야 하는데 개정안은 이를 허위·조작 ‘보도’로 표현했다”며 “이러면 (기성) 언론사도 가짜뉴스를 만드는 집단으로 보는 것인데, 저널리즘이라는 큰 틀에서 움직이는 매체에서 일부의 허위가 있을 수는 있어도 조작까지 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진실이라고 믿지 않는 뉴스를 다 가짜뉴스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가짜뉴스에 대한 정의가 모호한 상태에서 법이 개정되면서, 해당 법이 사실상 ‘언론 옥죄기’가 아니냐는 의심은 커졌다. 개정안에 원론적 찬성 입장을 밝힌 김성순 변호사(민변 언론위원장)는 “언론중재법은 명예훼손이 전제인 피해자 구제대책”이라며 “가짜뉴스 대책과는 별도다. 더불어민주당이 이걸 합쳐서 얘기하니까 꼬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짚었다.

정치 상황의 양극화도 관련이 깊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이념 대립이 강한 나라에서는 대체로 언론 신뢰도가 낮다”며 “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보수 언론을 불신하고,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진보 언론을 불신한다. 모두가 언론을 불신하는 사회”라고 했다. 이 같은 현상은 ‘조국 사태’ 등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더 뚜렷해졌다. 조국 전 장관 의혹에 대한 보도는 민주당 지지층의 언론 혐오를 이끌었고, 민주당이 언론 규제 법안을 밀어붙이는 동력이 됐다.

2019년 발생한 버닝썬 사건의 경우, 언론이 사건 초기 제보를 통해 다수의 의혹 보도를 쏟아내면서 공론화를 이끌었다. 보도 내용 중 일부는 사실로 인정됐다. 버닝썬 사건의 연루자가 연예인, 사업가, 공직자윤리법에 해당되지 않는 고위공무원 등이었는데, 이는 현재 개정안의 틀에서 봤을 때 징벌적 손배 제기가 가능한 이들이다. 김성순 변호사는 “언론중재법 5조2항2호에 따라 기자들의 우려는 해소된다”고 했다. 언론중재법 5조2항2는 ‘언론 등의 보도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진실한 것이거나 진실하다고 믿는 데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는 보도 내용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 조항이 개정안에서 신설된 30조 2에서 설명하는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와 부딪쳤을 때는 엇갈린 해석이 가능하다. 개정안은 허위·조작 보도 요건으로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 등으로 규정했는데, 해석이 모호해 결국 법원 판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계에선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탄생한 배경에 한국 사회의 낮은 언론 신뢰도 문제가 깔려있다는 점에서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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